Life

콜럼버스 떠나기 한달 전

Beagoodneighber 2024. 10. 18. 02:35

보스턴으로 이사 가기 한 달 남은 시점, 기록해 보는 콜럼버스에서의 삶. 
 
힘든 시기에 매력만 보고 낯선 이 도시로 이사를 왔었다. 괴로움에서 나를 지키고자 새로운 운동을 시작하고, 망가지지 않기 위해 건강한 음식을 먹었다. 그렇게 또 루틴화된 삶에 익숙해지고 또 이곳에서만 누릴 수 있는 서버브의 여유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서서히 만들어 나가면서 우리는 잠시가 아니라 앞으로 몇 년간의 미래를 이곳에서 이렇게 지내는 것도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둘이서 자주 나누곤 했다. 그런데 그 대화가 무색할 정도로 갑작스럽게 다른 좋은 기회가 생겨 급히 이곳의 삶을 정리하게 되었다. 
 
콜럼버스에 있는 동안 사실 대부분이 마음적으로 힘든 시기였지만, 우리에게는 아마도 다신 없을지도 모르는, 시간만큼은 자유로왔던 시기였기에 남편은 마음 편히 내켜하진 않았어도 내가 여기저기 많이 계획하고 끌고 갔다. 덴버 로드트립, 퀘벡시티 로드트립, 칸쿤, 페루, 하와이 다녀오고, 짧게는 독립기념일날 시카고 언니집, 캔터키주에 버번트립도 중간중간 갔다 오고. 그래서 그간의 시간이 정말 아깝지 않다. 여행과 여행사이에는 정말 열심히 운동했고.. 소셜미디어도 멀리했고, 쇼핑도 거의 안 했다. 좀 아쉬운 부분은 공부를 덜 했다는 것? 이 부분은 보스턴 가서 차차 해결해 보기로 마음을 먹어본다.
 
마지막 달이기에 여기서 해야할 것, 다녀오고 싶었던 곳들을 몰아치듯 열심히 다녀본다. 가을 하늘의 날씨도 너무너무 완벽해서 미루다가 여태껏 가보지 않았던 식물원과 동물원 갔다오기 좋았고, 투웨니원 파이러츠(내 기준 콜럼버스의 최고의 아아풋) 콘서트, 클리브랜드 프로그레시브 구장 갔다 오는 것(내 생에 첫 mlb포스트 시즌 직관)까지 다 했다. 아 제프가 준 티켓으로 다녀온 오하이오 주립대 풋볼경기도 갔다왔네. 이제 남은 것은 아무래도 가까이 있을 때 우진이언니집을 한번 더 갔다 오고 싶고, 중서부에 있을 때 꼭 가고자 마음먹었던 루이빌- 네슈빌- 뉴올리언스까지 로드트립 까지 갔다 오면 아쉬움이 많이 해소될 것 같아서 계획 중이다.
 

Franklin Park Conservatory and Botanical Gardens
Columbus Zoo
Progressive Field
Ohio Stadium


 
이곳을 떠나게 되어 가장 아쉬운 것은 아무래도 사람들이다. 여기 있는 동안 사실 놀랍게도 단 한 명의 한국인 친구도 없이 살았는데, 그건 우리 체육관의 사랑스럽고 친절한 사람들 덕분이다. 유창하지 못한 영어로 하는 나의 말도 항상 끝까지 들어주고 맞장구 쳐주고, 소셜 이벤트가 열릴때마다 적극적으로 우리를 초대해준 친구들. 콜럼버스에서 살면서 사람 때문에 상처받았던 적은 정말 한 번도 없다. 모든 것들이 넓게 퍼져있어서 우리말로 표현하자면 부대끼지 않아서 그런지, 사람들은 서로에 대한 친절함으로 가득 차 있다. 겉으로 보기엔 투박해 보이지만 보드라운 사람들. 보스턴 사람들도 그러할까?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우리는 비로소 이곳에서 세상으로 날아갈 준비를 어느 정도 한 것 같다. 몸과 마음이 건강한데 무엇인들 못하랴? 두고 두고도 이 도시는 우리에게 넘어져도 일어날 힘을 준 도시로 기억될 것이다. 추후 미국의 어떤 주에서 살게 되더라도 그 나름대로의 재미를 찾아가며 살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을 이곳에서의 삶에서 얻었고, 도시와 시골의 삶에 대한 이해 혹은 주거의 형태에따른 삶의 방향에 대한 이해의 폭이 좀 넓어진 것 같다. 나를 깨고 새로운 삶의 태도를 기꺼이 받아드렸던, 그래서 지금의 행복을 찾았던 유연한 내 자신이 필요할 때 꺼내보는 그런 챕터가 되기를 바란다.